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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모 영보
    • 로히어르 판 데르 베이던
    • 유화의 발견

     

    <로히어르 판 데르 베이던- 성모 영보(1400~1464년)>

    성모 영보

    가브리엘 대천사가 성모에게 다가와 예수의 잉태 소식을 알리고 있는 <성모 영보> LAnnonciaton를 보면 반짝이는 광택과 선명한 색상이 눈을 사로잡습니다. 부드러운 옷감과 바닥의 타일 그리고 목재로 만 든 가구의 절감이 그대로 느껴지며, 세밀하게 표현된 보석들과 천장에 매달려 있는 샹들리에의 모습도 무척 사실적입니다. 이러한 표현이 유화 덕분에 가능진 것입니다.
    또 다른 특징은 그림의 크기가 굉장히 작다는 점입니다. 네덜란드는 나라의 이름이 낮은 지대'라는 뜻이며 해발고도가 해수면 밑에 위치해 범람하는 바다와 싸우며 살았던 곳입니다. 하지만 플랑드르 사람들은 오히려 이러한 단점을 이용해 도시 곳곳에 수로를 뚫고 배 가 드나들 수 있게 만들어 무역을 통해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번성해 나갔습니다. 그래서 이곳은 귀족보다 상인의 힘이 강력했고, 여기저기 배를 타고 이동하며 살아가는 그들에게 크기가 큰 그림은 오히려 짐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브라크 가족의 세 폭 제단화〉와 같이 접어 서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제단화 형태의 그림과 작은 크기의 그림이 많이 발견했습니다.

     

    로히어르 판 데르 베이던

    Roger de la Pasture라고도 알려진 Rogier van der Weyden은 실제로 15세기의 유명한 플랑드르 화가였으며 북부 르네상스의 가장 중요한 예술가 중 한 명으로 간주됩니다. 1399년경 투르나이(현재 벨기에)에서 태어난 로히어르 판 데르 베이던은 또 다른 영향력 있는 플랑드르 거장인 Robert Campin 밑에서 훈련을 받은 후 브뤼셀에 자신의 작업장을 설립했습니다.

    판 데르 베이던은 종교적 주제나 성경의 장면을 많이 그렸습니다. 

    그의 가장 유명한 그림 중 하나는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의 몸을 둘러싸고 있는 동정녀 마리아와 성 요한의 슬픔에 잠긴 모습을 묘사한 "십자가에서 내리심"입니다. 이 걸작은 자신의 예술을 통해 순수한 감정과 영적인 깊이를 전달하는 판 데르 베이던 의 능력을 잘 보여줍니다.

    또 다른 주목할만한 작품은 스페인 부르고스 근처의 미라플로레스 수도원을 위해 의뢰한 "미라플로레스 제단화"입니다. 이 제단화는 복잡한 구성과 풍부하고 세밀한 장면을 창조하는 판 데르 베이던의 기술을 보여줍니다.

    판 데르 베이던의 영향력은 자신의 시대를 훨씬 넘어 확장되었으며, 유럽 전역의 예술가들이 그의 스타일과 기술을 모방했습니다. 플랑드르 회화의 대가로서 작품활동을 하던 판 데르 베이던 은 1464년 브뤼셀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유화의 발견

    파트라슈라는 강아지와 우유를 배달하던 네로를 기억하나요? 《플랜 더스의 개)라는 만화의 주인공이죠. 일본의 애니메이션으로 우리나 라에 들어와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졌지만 원작은 영국의 마리아 루이 즈 라메 Mana Louse kime 가 쓴 소설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플랜더스'는 영어식 발음이고 불어식으로 발음하면 '플랑드르'입니다. 플랑드르는 지금의 네덜란드와 벨기에 쪽을 지칭하는 예전 지역명입니다.
    이곳은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회화에서 독자적이고 독특 한 화풍이 만들어지고 발전한 지역입니다.
    이지역은 우선 사용한 물감이 획기적이었습니다. 당시 대중적으로 쓰이던 물감의 재료는 색채가 있는 나무나 식물, 광물 같은 자연 재료 어느 것이든 상관없었습니다. 그것 들을 모아 곱게 갈아서 물감의 안료를 만들고, 이 가루가 느슨하게 플어졌다가 칠하고 난 뒤 굳을 수 있도록 용매제, 전색제 역할로 달걀노른자를 섞었습니다. 이탈리아어로 섞는다'는 것을 템페라레 라고 하는데 여기서 착안해 이 기법을 '템페라'라고 불렀죠.
    하지만 이 기법에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공기 중에 노출되면 달갈노른자 때문에 물감이 빠르게 굳어 그림을 수정, 보완하기가 힘들 다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지금은 양계장이 있어 달걀 수급이 수월 하지만, 당시는 먹기에도 모자란 달걀을 그림을 그리기 위해 막대한 양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에 몇몇 화가가 기름을 사용해보 았으나 반대로 마르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습니다. 그래서 당시 화가들은 좀 더 저렴한 가격에 적절하게 물감을 굳힐 수 있는 재료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했습니다.
    그 해답을 15세기에 플랑드르 지역에서 활동한 화가 얀 판 에이 크가 발견합니다. 그는 달걀노른자 대신 테레빈유, 아마씨 유 등을 섞어 물감이 적절한 시간에 마를 수 있는 배합을 찾아내 상당 히 긍정적인 결과물을 얻었는데, 이것이 바로 유화의 시작입니다. 유화는 템페라화보다 물감 마르는 시간이 길어 수정, 보완하기 좋고 두껍거나 엷게 칠하기가 쉬워 질감을 더욱 잘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기름이다 보니 광택이 나 더욱 화려해 보이고, 그림을 더욱 세밀하고 정밀하게 그릴 수 있게 되면서 플랑드르 회화만의 독특함이 생겨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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