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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법관 롤랭과 성모마리아
    • 그림 속 수백 명
    • 얀 반 에이크

     

    얀 반 에이크 <대법관 롤랭과 성모마리아 >

     

    대법관 롤랭과 성모마리아

    〈대법관 롤랭과 성모 마리아〉 a Vierge et IBnfant au chancelier Rolin를 보고 나면 누구나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그림은 현재 루브르에 걸려있는데요 그린 화가는 바로 유화를 재정립한 얀 판 에이크 Yan van Byck, c.1395~1441입니다. 이 그림은 루브르에서도 관람객들이 가장 흥미를 갖고 보는 작품이기도 하다는군요.  이 그림에 놀라는 이유는 높이 66cm, 폭 62cm 크기의 작은 그림 속에 수많은 상징과 의미가 숨어 있으며 소름 끼칠 정도로 디테일한 표현에 혀를 내두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크고 화려한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도 이 작품을 통해 색다른 감동을 느낄 수 있답니다. 그림을 자세히 살펴볼까요? 그림 왼쪽에 무릎을 꿇고 있는 남자는 부르고뉴의 공작 필리프 르 봉의 대법관이었던 니콜라 롤랭입니다. 그는 이 그림의 주문자로 두 손을 꼭 모은 채 오른쪽에 있는 성모와 예수를 바라보며 간절히 기도하고 있으며, 아기 예수는 그런 그에게 축성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모에게 왕관을 씌우려는 천사, 그림 가운데 뒷모습으로 그려진 2명의 인물까지 총 6명이 눈에 들어올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 이 그림에는 수백 명이 그려져 있습니다. 어디 에 있는지 보이시나요?

     

    그림 속 수백 명 

    그림 중앙에는 30명이 다리를 건너고 있고 강에 떠 있는 배들 위 에는 약 20명이 빼곡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롤랭 뒤쪽으로 보이는 마을과 아기 예수 뒤쪽으로 보이는 성당에 수십 명이 더 그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놀라운 점은 이 모습을 실제 작품 앞에서도 보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워낙 작품이 작아 사람의 눈으로 확인하기가 어 렵기 때문이죠. 그래서 관람객들이 돋보기로 그림을 살펴보기도 하고, 어떤 관람객은 그림을 자세히 보기 위해 점점 가까이 다가가다가 쓰고 있던 모자로 그림을 살짝 건드린 해프닝도 있다고 합니다.
    놀라운 점은 또 있습니다. 그림을 이렇듯 세밀하게만 그린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의미를 지닌 상징들을 의도적으로 작품 속에 배치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림을 다시 보면 사람들이 마을에서 성당으로 다리를 건너는 모습은 현실 세계에서 천상계로 넘어가는 모습이라 볼 수 있고, 다리의 오른쪽 끝은 절묘하게 아기 예수의 축성의 손짓과 맞물려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를 통하지 않은 자는 절대로 천상계로 갈 수 없다는 기독교의 기본 교리를 나타내고 있죠.
    바닥 타일에 여덟 갈래로 뻗어 있는 문양은 예수가 태어날 때 떠 올랐던  별의 모양으로 예수의 탄생을 나타내고 있으며, 아기 예수가 손에 들고 있는 십자가 달린 지구의를 바라보고 있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은 훗날 예수가 겪을 시련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아기 예수가 수의를 상징하는 하얀 천 위에 앉아 있는 모습에서는 훗날 그의 죽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롤랭 대법관 머리 위로는 구약성서의 3가지 내용이 조각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좌측부터 아담과 이브의 추방, 카인과 아벨의 살인 사 건, 술에 취한 노아의 이야기까지 각각의 조각은 인간의 교만, 시기, 탐식을 상징하고, 다른 기둥의 주두에 표현된 사자는 분노, 기둥에 깔 려 찌그러진 토끼는 색욕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인간의 7대 죄악을 나타내는 것들로 항상 경각심을 가지고 모든 것을 경계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교훈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죠.
    이처럼 이 그림은 세밀하고 정교한 표현력과 더불어 수많은 상징으로 아직도 미스터리하게 남아 학자들과 많은 사람에게 물음표를 던지고 있습니다.  롤랭 대법관 손 뒤쪽으로 부를 상징하는 공작새가 현실 세계 편에 그려져 있고, 성 모 마리아의 미덕을 상징하는 수많은 꽃이 핀 정원 안에는 죽음을 상징하는 까치가 그려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는 죽음은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성모 마리아의 위로와 예수의 축복을 받는 것이라는 메시지가 아닐지 조심스레 추측해 봅니다.

    이 작품을 주문한 롤랭은 프랑스 부르고뉴(Bourgogne) 지역을 다스리던 인물입니다. 당시 빈곤과 기근 그리고 전염병 때문에 사람들이 힘들어하자 그는 1443년 가난한 병자들을 돕기 위해 병원을 설립했습니다. 그곳이 현재의 오스피스 드 본(Hospice de Beaune)입니다. 부르고뉴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와인이 생산되는 곳이기도 하죠. 이후 많은 포도밭이 이 병원으로 기증되었고, 이 포도밭들에서 생산된 와인을 매년 11월 셋째 주 주말에 경매를 통해 판매해 병원 유지와 가난한 병자들을 돕는 데 사용하 고 있습니다. 그림 속 롤랭 뒤쪽 산등성이가 포도밭으로 보이는 것이 우연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얀 반 에이크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는 1390년경 현재 벨기에의 마세이크(Maaseik)에서 태어난 북부 르네상스의 선구적인 플랑드르 화가였습니다. 

    는 유화 기술을 완성하여 예술 작품의 세부 묘사가 가능하게 했습니다. 그는 오일 유약과 레이어를 정확하게 사용하여 빛과 그림자의 미묘한 변화와 같은 사실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반 에이크는 당대 가장 부유하고 강력한 통치자 중 한 명인 부르고뉴 공작  필리프의 궁정 화가로 일했습니다. 부르고뉴 궁정에서의 그의 지위를 통해 그는 권위 있는 의뢰에 참여하고 그 시대의 다른 주요 예술가 및 지식인과 협력할 수 있었습니다.  반 에이크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는 "겐트 제단화"라고도 알려진 "신비한 어린양의 숭배"입니다. 그의 형제 Hubert van Eyck와 공동으로 제작한 이 폴립 제단화는 플랑드르 예술의 걸작으로 간주됩니다. 복잡한 디테일, 생동감 넘치는 색상, 복잡한 도상학으로도 유명합니다.  반 에이크는 놀라운 사실감으로 피사체의 유사성과 개성을 포착하는 초상화로도 유명했습니다. 상징적인 "조반니 아르놀피니와 그의 아내의 초상화"와 같은 그의 초상화는 질감, 직물, 얼굴 표정을 놀랍도록 정밀하게 표현하는 그의 기술을 보여줍니다. 반 에이크는 부르고뉴 공작을 대신하여 여러 유럽 궁정을 여행하면서 여러 외교 사절단을 맡았습니다. 이러한 여행을 통해 그는 자신의 예술적 지식을 쌓고 다양한 문화적 영향을 접하며 동료 예술가 및 후원자와 관계를 맺을 수 있었습니다.  반 에이크의 불가사의한 초상화 중 하나는 자화상으로 여겨지는 "빨간 터번을 쓴 남자"입니다. 그림에는 "Johannes de Eyck fuit hic"("Jan van Eyck가 여기에 있었다")라는 라틴어 문구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반 에이크가 자신의 작가성과 기술을 주장하고 싶어 했음을 암시합니다.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의 예술적 혁신과 업적은 서양 미술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의 세심한 사실주의, 기술적 기량, 유화 기술의 숙달은 르네상스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러 세대의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는 1441년 브뤼헤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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