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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테와 베르길리우스
- 윌리암 아돌프 부그로
- 단테의 신곡
단테와 베르길리우스
오르세미술관의 검색대를 지나 표를 구매하고 입장하면, 마치 유럽의 어떤 기차역 플랫폼에 도착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이곳은 원래 기차역으로 지어져 그 모습이 남아 있어요. 표를 검사하고 나면, 박물관의 입구인 듯한 느낌보다는 마치 전시가 시작되는 역 플랫폼으로 들어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거죠. 이곳은 양쪽으로 밀레 같은 바 르비종파의 그림과 들라크루아 등의 낭만주의 그림으로 가득 차 있으며, 통로에는 다양한 조각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유럽을 여행하는 분들이라면 가끔 들러보기도 하는 곳인데요, 오르세미술관은 루브르나 오랑주리와는 달리 작품들이 자주 이동하는 편입니다. 이동하는 이유 중 하나는 19세기 후반의 작품들을 다양하게 전시하여 프랑스의 미술 발전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이 시기에는 새로운 작가들이 등장하고 많은 걸작들이 탄생했기 때문에 이를 보여주기 위해 작품들이 자주 이동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오르세는 19세기 후반의 다양한 작품들을 골고루 전시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오르세미술관은 1986년에 개관하여 2000년대에 들어와서야 사람들에게 익숙해지고 자리를 잡았습니다. 특히 '아카데미 학파'라 불리는 그림들은 프랑스 교육 시스템이 길러낸 예술가들의 작품으로, 이들의 가치를 재발견하려는 오르세의 노력이 있었기에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 중에서도 윌리암 아돌프 부그로의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는 주목할 만한 작품 중 하나입니다.
이 그림은 두 사람이 서로 싸우는 장면을 그린 것으로, 한 명이 다른 한 명을 공격하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특히 목을 물어뜯는 장면은 섬뜩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뒷 배경에는 지옥을 상징하는 붉은 배경과 악마, 인간들이 뒤엉켜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 그림은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에피소드를 소재로 하고 있어요.
미술을 공부하고 성공하고자 하는 젊은 화가들에게는 아카데미 교육과 국전 콩쿠르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탈리아 로마로의 유학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살롱전 1등은 일종의 인생 역전을 뜻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유럽의 미술 제도는 꾸준히 발전해 왔습니다.
윌리암 아돌프 부그로
윌리암 아돌프 부그로는 영국 이민자 가족에서 태어나서 아버지가 포도주 도매상으로 생계를 꾸렸습니다. 그의 미술적 재능은 어린 시절부터 드러났고, 파리 국립 미술학교에 입학하여 유명 화가들에게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1848년, 22세의 나이에 살롱 공식 경쟁에서 불랑제라는 화가와 동률 2등을 차지했는데, 이는 그의 미술적 재능을 입증하는 좋은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부그로는 1등이 아닌 이상 의미 없는 수상이라고 생각했고, 다음 해 다시 살롱에 출품하였으나 이번에는 성적을 받지 못하고 낙선했습니다.
이러한 실패로 인해 그의 가족들은 실망을 하게 되었고, 부그로는 더 이상 가정의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스스로 방법을 모색해야 했습니다. 하루에 열다섯 시간씩 끈질기게 그림을 그리고 고민하는 부그로는 뛰어난 미술적 표현 능력뿐만 아니라 전략과 판단력에서도 뛰어났습니다.
부그로가 주목한 것은 1822년 들라크루아가 살롱전에서 성공한 사례였습니다. 들라크루아는 당시에는 낯선 주제인 르네상스를 다루어 전혀 새로운 시도를 하였는데, 이는 많은 우려를 불러일으켰지만 관람객들로부터 환영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성공은 들라크루아에게 안정된 위치를 안겨주었고, 그는 평생을 통해 지원해 줄 인맥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부그로는 들라크루아의 성공을 거울삼아 자신의 작품을 현대화하고자 했습니다. 르네상스 주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함으로써, 그의 작품은 고전적인 가치와 현대적인 감각을 결합시켰습니다. 이를 통해 부그로는 전설적인 화가로서의 지위를 다시 한 번 확립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창조는 고전에서 출발한다는 진리를 부그로는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단테의 신곡
위조범 지안니 스키키와 이교도 연금술사 카포키오의 대치는 단테와 베르길리우스 앞에 펼쳐진 장면으로, 그들은 지옥에서 영원히 싸우는 형벌을 받았다고 단테가 증언한 것입니다. 이들의 격렬한 대치는 미켈란젤로의 조각처럼 극도로 표현되어 있으며, 부그로의 연출은 그들의 근육이 역동적으로 묘사되어 있어 조각보다 더욱 생동감 있습니다. 해부학을 열심히 공부한 부그로는 비율이 어색한 지점을 보이지 않도록 섬세하게 완성했습니다.
부그로는 그리스 신화와 라틴 문학 뿐만 아니라 영국 작가들의 작품에서도 영감을 받아 배경의 하늘 색감이나 군중 장면을 그렸습니다. 그의 작품은 들라크루아나 아리 셰퍼 같은 화가들의 그림과 비슷한 요소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창적이고 도전적인 면모를 보이기는 합니다. 그는 로마상 수상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엄격한 심사위원들의 눈도 만족시킬 수 있도록 세밀한 부분까지 완벽하게 마무리했습니다.
부그로의 작품은 모더니즘의 시대에도 전통을 고수하는 예술가로서 인정받았습니다. 그는 도전적인 모더니즘 예술가들과 대비되는 전통적인 아름다움과 세련된 표현을 제시하며, 그의 성공은 전통과 혁신의 균형을 이룬 결과입니다. 이 그림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연출되어 있어, 그의 의도를 잘 전달합니다. 전통적인 작품들이 다시 주목받게 된 이유는 19세기 후반의 다면적인 과거를 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부그로는 전통과 혁신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그의 작품은 이 두 가지를 완벽하게 조화시킨 결과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