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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루이 14세의 초상
    • 백합
    • 이야생트 리고

    이야생프 라고 <루이 14세의 초상>

     

    루이 14세의 초상

    "짐은 곧 국가다!"Lea, Cest moi라고 외치며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왕이 되고자 했던 남자가 있습니다. 17세기 프랑스의 왕 루이 14세입니다.

    루이 14세의 초상Louis XIV, roi de France 속 그는 온화하지만 힘 있는 표정과 기개 넘치는 모습으로 단상 위에서 관람자들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빨간색 커튼과 함께 캔버스를 채우고 있는 푸른빛과 금빛 그리고 하얀색의 조화는 간결해 보이면서도 화려해 그를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또한 머리 뒤쪽 명암 처리로 인해 생긴 희미한 후광은 마치 그를 예수처럼 보이게 만들면서 신성함까지 더하고 있죠.

    이처럼 왕의 초상화는 그냥 그린 것이 아니라 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작업이 더해졌습니다. 그리고 관람자들이 올려다봐야는 위치에 걸어 왕의 위업을 느낄 수 있게 했습니다. 왕을 상징하는 많은 표상을 그림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같이 한번 찾아볼까요?

    우선 그가 오른손에 쥐고 있는 왕홀 Le scper이라는 지팡이, 그 아래로 왕관 La cowome과 정의의 손 La matn de ustc, 그리고 샤를마뉴 Chaeder magne (사를 대제, 9세기경 서로마 제국의 황제)가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보석들이 박힌 멋진 검을 왼쪽 허리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리게일리어'Regalia라고 하는데, 평소에는 파리 생드니 Sine-Denis 성당에 보관하다가 대관식 때 꺼내 왕의 힘과 권력 그리고 신성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커튼 뒤로 살짝 숨겨진 옥좌, 옷의 겉면, 쿠션, 탁자에는 백합 무늬가 수 놓여 있습니다.

     

    백합

    백합에는 여러 이야기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6세기경 프랑스 왕이었던 클로비스와 관련된 일화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본국으로 돌아오던 클로비스는 강 한쪽에 핀 백합을 발견하고 승전을 자축할 목적으로 말에서 내려 꺾으려고 했습니다. 이때 뒤쫓아 온 적국의 병사가 그를 향해 활을 쏘는데 다행스럽게도 꽃을 따기 위해 허리를 숙여 화살을 피하고 목숨을 구했습니다.

    그 이후로 백합이 프랑스 왕가의 상징이 되어 그럼 곳곳에 표현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왼쪽 배경에 그려진 기둥 하단에는 부조로 표현된 정의의 여신도 있습니다. 이런 상징물들을 통해 루이 14 세는 권력은 물론이거니와 왕으로서의 정통성과 정의까지, 모든 것을 갖추고 있음을 나타낸 것입니다.

    이 초상화는 그의 손자이자 훗날 스페인 왕위에 오르는 필리프를 위한 것으로, 이야생트 리고가 그렸습니다.

    하지만 이 그림을 받아 든 루이 14세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만족스러워 원본은 베르사유궁전에 보관하고 복제품을 만들어 유럽 전역으로 보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루이 14세는 자신의 초상화를 손자를 비롯해 각국의 왕과 귀족들에게 선물하려고 했던 것일까요?

    대표적으로 루아르지역의 슈농소 ChenonceauChenonceau 성에 가면 당시 성의 주인이었던 삼촌 방돔 VedomeVedome 공작에게 선물한 그의 다른 초상화 한 점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 막강한 부와 권력을 가지고 있던 삼촌을 견제할 목적으로 선물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내가 평소에 지켜보고 있으니 경거망동하지 말라!"라는 의미였던 것이죠.

    이처럼 루이 14세는 자신의 모습을 자신감 있게 그려 만천하에 알림으로써 세상의 권 력을 잡은 남자입니다.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기 위해 자신의 프로필을 열심히 꾸미고 만들어가는 지금의 우리들에게도 '나처럼 자신감 있게 표현해봐"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그가 자신을 사랑하고 표현할 줄 알았기에 당대 최고의 권력과 부를 누렸던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이야생트 리고

    이야생트 리고(Hyacinthe Rigaud)1659718일 프랑스 페르피냥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뛰어난 재능은 어릴 때부터 인정받았고, 고향에서 첫 미술 교육을 받은 후 몽펠리에로 건너가 저명한 초상화가인 앙투안 랑(Antoine Ranc)의 지도를 받으며 공부했습니다.

    1681년 리고는 프랑스 미술계의 진원지인 파리로 떠났고, 그곳에서 그의 능숙한 초상화로 빠르게 인정을 받았습니다. 피사체의 모습과 성격을 놀랍도록 정밀하게 포착하는 그의 능력은 귀족들의 관심을 끌었으며 사회의 최고 계층으로부터 꾸준한 의뢰를 받았습니다.

    리고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는 의심할 바 없이 1701년에 그린 태양왕 루이 14세의 초상화입니다. 왕이 직접 의뢰한 이 초상화는 루이 14세의 장엄한 화려함과 웅장함을 불멸의 인물로 만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눈부신 왕실 예복을 입고 권력의 상징으로 장식된 군주에 대한 리고의 묘사는 루이 14세 통치의 본질을 포착하고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통치자 중 한 명으로 그의 입지를 확고히 했습니다.

    초상화가로서 리고의 성공은 프랑스 궁정을 넘어 유럽 전역의 귀족과 고관들로부터 의뢰가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왕족과 귀족의 초상화 외에도 리고는 급성장하는 중산층뿐만 아니라 예술가, 학자 및 기타 주목할만한 인물도 묘사했습니다. 사회적 지위에 관계없이 대상의 본질을 포착하는 그의 능력은 크게 호평을 얻었고 대가로서의 명성을 확고히 했습니다.

    그의 명성과 성공에도 불구하고 리고는 평생 동안 겸손하고 헌신적인 예술가로 남아 17431229일 사망할 때까지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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