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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로드 젤레
- 풍경이 주인공
- 크리세이스를 아버지에게 돌려보내는 오디세우스
클로드 젤레
클로드 젤레(Claude Gellée)라고도 알려진 클로드 로랭(Claude Lorrain)은 1604년 로렌 공국(Duchy of Lorraine)에서 태어난 바로크 시대의 유명한 프랑스 화가입니다.
로랭은 1617~1622년경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에 로마로 이주하기 전에 프랑스에서 초기 예술 교육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로마는 바로크 시대 유럽의 예술 중심지였으며, 로랭은 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을 포함한 활발한 예술가 공동체 속에서 활동했습니다.
로랭의 풍경화은 이상화되고 목가적인 배경을 특징으로 하며, 종종 고전적 또는 성서적 장면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그는 원근법, 구도, 빛과 분위기가 풍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갖고 있었으며 이를 능숙하게 캔버스에 옮겨 놓았습니다.
로랭은 예술가들이 그리는 풍경을 단순화하고 틀을 잡는 데 사용했던 작고 어두운 볼록 거울인 "Claude glass" 또는 "검은 거울"을 사용했습니다. 이 장치는 로랭과 그의 동시대인들이 장면의 본질을 포착하고 구성에서 조화와 균형 감각을 얻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로랭의 작품은 유럽 전역의 귀족 후원자들의 높은 관심을 받았으며 그는 일생 동안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의 그림은 특히 영국 수집가들에게 높이 평가되었으며 영국 귀족으로부터 수많은 의뢰를 받았습니다.
그의 인기와 재정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로랭 은 상대적으로 겸손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경력의 대부분을 로마에 머물면서 1682년 사망할 때까지 계속해서 많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풍경이 주인공
로랭은 푸생과 동시대 인물로 그 역시 프랑스인이지만 로마에서 활동했으며 북유럽과 이탈리아 회화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푸생과 로랭의 큰 차이점은 로랭의 작품은 풍경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당시 그림에서 풍경은 어떤 인물과 사건을 표현하는 배경에 지나지 않는 소재였습니다. 하지만 북유럽에서 종교 개혁으로 인해 개신교가 자리를 잡고 우상숭배가 금지되면서 북유럽 화가들의 시선은 자연으로 옮겨갑니다. 그리고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라는 우리의 옛말처럼 당시 예술가들의 성지는 로마였고, 로랭도 로마에서 활동하면서 로마는 물론 북유럽 회화의 영향도 받게 됩니다. 하지만 로랭은 풍경에 더 관심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신화와 역사 이야기인 고전은 그저 아름다운 풍 경을 그리기 위한 소재에 불과해 보이니까요.
크리세이스를 아버지에게 돌려보내는 오디세우스
'크리세이스를 아버지에게 돌려보내는 오디세우스 '는 제목 그대로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여인 크리세이스는 아폴론 사제 크리세스의 딸입니다. 그리스 군이 트로이를 포위하면서 주변국들을 공격하는데, 그때 크리세이스는 그리스 군의 총사령관 아가멤논의 포로가 됩니다. 크리세스는 그리스 군영으로 찾아가 딸을 돌려달라고 청하지만 아가멤논은 거절합니다. 이에 화가 난 크리세스는 아폴론 신에게 그를 벌해달라고 간청하고, 사제의 기도를 받아들인 아폴론은 그리스 군에 전염병을 풀어 재앙을 일으 킵니다. 이것이 트로이 전쟁을 배경으로 51일간 벌어지는 인간의 비극을 다룬 <일리아스> lias 서사시의 발단 부분입니다. 이후 지혜로운 오디세우스가 사절 역할을 하면서 결국 크리세이스는 아버지 품으로 돌아갑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크리세이스를 그림 속에서 한번 찾아볼까 요?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림 하단 중 앙에 파란 옷을 입고 부둣가에 앉아 있는 사람이 그녀입니다. 오디세우스가 그 앞에서 이야기를 건네고 있죠. 그림의 주이공이라기에는 너무나 비중이 작고 초라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오히려 우리의 눈을 사로잡는 것은 고요하게 퍼져나가는 붉고 노란 노을빛입니다. 그 빛을 긴 항해를 끝내고 집으로 돌라오는 함선을 따스하게 감사 안고 있으며 , 할기찬 부둣가의 소음은 우리의 귀에 그대로 전해지는 듯합니다. 이처럼 풍경에 더 관심이 많았던 로랭은 인물을 그릴 때 다른 사람을 시키기도 했다고 합니다. 당대 화가들과는 다른 그림을 그렸기에 그의 작품은 수집가들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의 작품을 위조하는 화가들도 있었을 정도니까요. 로랭은 자신의 작품 목록을 만들고, 위작을 판별하기 위해 미리 복제화까지 만들어두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수백 년 동안 배경에 불과했던 풍경이 그의 손을 통해 본격적으로 주인공이 되기 시작했고, 200년 뒤에는 윌리엄 터너라는 화가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지금도 로랭은 살아 숨 쉬며 우리 곁에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