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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로크시대 대표화가
    • 외교적 능력
    • 마을축제

    < 페테르 파울 루벤스- 마을축제(1638년)>

    바로크시대 대표화가

    세상을 살면서 모든 것을 이루고 죽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그런데 여기 그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화가가 있습니다. 살아생전 부와 명예 그 어느 것 하나 빠뜨리지 않고 모든 것을 이루고 세상을 떠난, 17세 기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페테르 파울 루벤스 Perus Paulus Rubens, 157~1640입니다.

    루벤스는 어릴 때부터 그림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고 외국어에 도 능통해 4개 국어를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 부터 알아본다고, 그는 보통내기가 아니었죠. 화가이면서 성품이 좋고 사교성이 뛰어나 외교관의 역할도 훌륭하게 수행했습니다.
    특히 그는 돈 버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주문자의 요구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수많은 의뢰를 소화해내기 위해 최초로 그림 공방을 만들었습니다. 제자들이 자신의 화풍으로 그릴 수 있게끔 미리 훈 련을 시켰고, 의뢰가 들어오면 스케치와 색감 등을 지시한 다음 제자 가 그림을 그리면 검사하고 서명을 했죠, 유럽의 박물관, 미술관마다 루벤스의 작품 하나씩은 꼭 걸려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가 너무 속물처럼 보이나요? 그런데 만약 여러분의 상사가 인 품이 떨어지고 자신보다 업무 능력이 부족하다면 계속 일을 함께해나 갈수 있을까요? 루벤스의 제자들이 공방을 지키며 그를 따랐다는 것 은 그의 훌륭한 성품과 뛰어난 실력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는 1577년 6월 28일 베스트팔렌(현재 독일) 지겐에서 태어난 플랑드르 바로크 화가입니다. 그러나 그는 대부분의 삶을 스페인령 네덜란드(현재 벨기에)에서 보냈습니다. 그는 바로크 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가 중 한 명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루벤스는 개신교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가 죽은 후 그의 어머니는 가족을 앤트워프로 데려가 그곳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했습니다. 그는 앤트워프에서 초기 미술 교육을 받은 후 이탈리아로 여행하여 8년 동안 티치아노와 틴토레토와 같은 르네상스 거장들의 작품을 공부했습니다.  루벤스의 스타일은 역동성, 풍부한 색상, 극적인 구성이 특징입니다. 그는 인간의 형태를 능숙하게 표현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림에서 복잡한 감정과 이야기를 전달하는 능력으로도 유명했습니다. 1608년 앤트워프로 돌아온 루벤스는 빠르게 당대의 대표적인 예술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는 유럽 전역의 교회, 왕실, 부유한 후원자들로부터 수많은 의뢰를 받았습니다. 그는 많은 조수들과 함께 대규모 작업장을 운영하여 대규모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방대한 작품을 제작할 수 있었습니다.

     

    외교적 능력

    루벤스의 예술적 재능은 그림에만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또한 외교에도 능숙했으며 유럽의 군주 및 귀족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그는 스페인 네덜란드의 외교관으로 일하면서 외교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유럽 전역을  여행했습니다. 루벤스가 얼마나 명석했는지를 알 수 있는 유명한 일화가 하나있습니다. 그는 의뢰받은 그림을 그리면서 외교에 필요한 문서를 작 성하기 위해 조수에게 구술로 내용을 전달했으며, 그를 방문한 의사 가 던지는 질문에도 명쾌하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림을 그리며 외 교 문서를 작성하고 진료까지 동시에 해결한 것입니다.

    루벤스의 작품은 종교 및 신화 장면, 역사적 사건, 풍경, 초상화 등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그는 종종 자신의 그림에 우화적이고 상징적인 의미를 주입하여 고전 신화, 기독교 신학, 현대 정치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그의 작업장은 많은 야심 찬 화가들의 훈련장이 되었고, 그의 영향력은 그의 생애를 훨씬 넘어 유럽과 그 너머의 바로크 미술 발전을 형성했습니다. 루벤스는 1640년 5월 30일 앤트워프에서 사망할 때까지 계속해서 그림을 그리고 권위 있는 의뢰를 받았습니다. 그의 그림은 전 세계 박물관과 컬렉션에서 볼 수 있습니다. 루벤스가 미술계에 끼친 영향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크며,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명으로 기억됩니다.

     

    마을축제


    루벤스는 스물세 살의 나이에 이탈리아 유학길에 올라 르네상스 거장들의 작품을 연구하고 고대 미술을 공부했으며 그들의 장점을 흡 수했습니다. 특히 빛과 명암 대비를 극명하게 사용함으로써 극적이고 긴장감 있는 그림을 그려낸 카라바조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 래서 그의 그림을 보면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감각적이고 관능적입니 다. 때론 신체 표현이 너무 과장되어 사실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 도 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당시 귀족과 왕실 사람들의 입맛에 딱 들어맞았고, 장엄한 오페라 무대를 연상시키는 구도와 화려한 색채는 당시 최고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런 그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 말년에 완성한 작품이 바로 〈네덜란드 지방의 축제 또는 마을의 결혼식〉La Kermesse ou Noce de ilage라고도 불리는 <마을축제> 입니 다. 큰 농가의 건물 앞에 밀단을 깔고 앉은 인물들이 보입니다. 추수 가 끝나고 열린 축제 또는 결혼식 장면을 그렸다고 여겨집니다. 루벤 스는 삶의 즐거움과 기쁨을 표현하기 위해 축제 속 수많은 인물을 그 려 넣었습니다. 그림 왼쪽 아랫부분을 보면 한 남자가 손으로 여인을 감싸고 춤을 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왼쪽에 있는 여인이 자신과 춤을 추자고 손을 잡아당기고 있고,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한 여인은 털썩 주저앉아 잔뜩 화가 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그 옆의 격 렬하게 마실 것을 거부하는 손자에게 억지로 물을 먹이려는 할머니의 모습은 웃음을 부르고, 술에 떡이 된 남자들 속에서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여인들의 모습에서는 어머니의 애환도 느껴집니다. 아주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는지 두 할아버지가 손을 맞잡고  놀라고 있는 듯한 모습, 술에 취해 널브러진 사람, 키스를 하며 사랑에 빠진 연인들 그리고 나무 아래 악사들의 연주에 맞추어 인물들이 흥겹게 뒤엉켜 우리나라의 '강강술래'와 비슷한 '파랑돌이라는 춤을 추는 사람들도 보입니다. 모두가 삶의 순간을 즐기고 있습니다.
    혹자들은 그림이 외설적이고 파격적이라고 합니다. 그림 오른쪽 작은 오두막에 삐죽 나와 있는 돼지 코와 술통을 뒤지는 개는 식탐을 상징하며, 인간의 비열함과 천함에 대한 도덕적 메시지를 던지고 있 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화가는 그저 삶의 희로애락을 여러 장면으로 녹여내고 다채롭고 화려한 터치로 리듬감을 부여하며 하나의 장대한 오케스트라를 만들어냈을 뿐입니다. 이러한 그의 그림은 후대 화가 바토를 비롯해 낭만주의의 들라크루아, 인상주의의 르누아르 등 수많은 화가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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