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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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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다
- 맹목적인 믿음의 위험성
- 카포디몬테 미술관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다
그림에는 6명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들의 얼굴을 자세히 보면 오른쪽의 하늘색 옷을 입은 인물은 눈이 파여 있고 그 뒤를 따르는 인물들은 눈이 먼 상태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들입니다. 벙거지를 쓰고 망토를 두른 복장을 보면 순례자나 나그네 같은데, 서로의 막대기와 어깨를 부여잡고 위태로이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앞을 못 보는 다른 사람을 인도하면 어떻게 될까요?
자신의 몸도 가누기 힘든 상태일 테니 당연히 그 끝은 참담합니 다. 선두에 있던 맹인이 구덩이로 떨어지자 뒤따르던 사람도 넘어지려 하고 있습니다. 화가 났는지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하고 있는 것 같네요. 하지만 더 안타까운 이들은 뒤따라오고 있는 4명입니다. 자신들에게 닥칠 운명은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아슬아슬하게 그저 뒤따르고 있을 뿐이니까요
그림의 내용은 마태복음 15장 1절부터 20절까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이 예수를 못마땅하게 여겨 계명을 어기는 모습을 보고 예수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그 들을 내버려 두어라. 그들은 눈먼 이들의 눈먼 인도자이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것이다."
맹목적인 믿음의 위험성
그림 중앙에 교회가 있지만 맹인들은 그 존재를 알지 못한 채 자 신들끼리 의지하며 세상의 길을 위태로이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그림에서 맹인은 하느님의 말씀을 모르는 사람들, 교리를 공부하지 않고 맹목적 신앙 행위를 일삼는 무지한 자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종교에서 무지와 거짓은 둘 다 큰 죄악에 해당합니다. 휴대폰만 보고 있다가 다른 사람의 움직임을 곁눈질로 보고 생각 없이 따라가지 말고 항상 주변을 신중하게 살피고 신호도 직접 확인하고 움직여 야 한다는 것, 살아가면서 끊임없는 배움과 겸손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그런데 이 그림은 종교적인 이야기볼 통해 도덕적인 메시지만 던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당시 플랑드르 지역은 스페인 치하에 있었는데, 스페인은 가톨릭 국가로서 풀방드로 지역의 개신교도들은 탄압했습니다. 특히 당시 스페인 왕은 매우 강압적이었는데 그로 인해 사회적 분위기가 흉흉해지고 올바른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화가는 암울하고 절망적인 분위기 속에서 민족의 아픈 현실을 이해하고 이를 해학적으로 풀어냅니다. 당시 플랑드르를 탄압한 지도층을 6명의 맹인으로 빗대어 표현했으며, 그들이 무지와 무능력으로 시민들을 구렁텅이로 빠뜨리고 있음을 나타낸 것입니다. 참 통쾌한 한 방을 가지고 있죠? 이 그림을 그린 피터르 브뤼헐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백성들이여, 희망을 잃지 마라. 절망에서 분연히 일어나 희망을 노래하라. 흑암의 세력은 이제 곧 자취를 감출 것이니•·•."
카포디몬테 미술관
이 작품은 루브르와 카포디몬데 미술관, 두 곳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루브르에 있는 작품은 이탈리아 나폴리의 카포디몬테 미술관에 소장된 원작을 모사한 것입니다. 원작은 피터르 브뤼헐이 그렸으나 루브르에서 소장하고 있는 모사작을 그린 사람은 정확하게 확인된 바가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루브르 공식 사이트에는 화가 이름 뒤에 물음표(?)가 붙어 있습니다. 전체적인 그림의 구도, 인물의 배치, 인물들이 입고 있는 옷 등은 동일하지만 모사작은 원작보다 배경이 훨씬 더 확장되어 하늘도 보이고 날아가는 새들도 보입니다. 또한 원작에서는 교회가 풀 하나 자라지 않고 삭막한 곳에 버려진 것처럼 보이지만, 루브르에 있는 모사작에는 교회 앞에 녹음이 우거져 있고 푸른 잔디 위로 한 남자가 새들에게 모이를 주고 있으며 소들이 개울에서 물을 마시고 있습니다. 교회 관리인처럼 보이는 인물도 있죠.
원작과 달리 모사작은 종교에 대한 비판보다는 서민들의 삶에 좀 더 초점을 맞추어 그린 게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 봅니다. 두 작품을 비교하면서 자신만의 해석을 만들어보면 그림감상의 재미가 배가 될 것입니다.